동족상쟁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 [2026-01-13]
- 1월 13일
- 1분 분량
우리나라는 8.15 광복 후 남북으로 양단되었고, 이념과 사상도 분열되었습니다. 그리하여 동족상쟁의 비극인 6.25전쟁이 있게 되었습니다. 이때 남한의 이○○ 대통령은 아무 준비도 없이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. 해서 북한이 일시에 대구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. 이때 유엔군이 우리나라(남한)를 도와 다시 38선까지 밀고 올라갔습니다. 이때 남한과 북한은 총알 한 개도 생산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외국에서 들여온 총과 무기로 서로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. 이때 저도 최전방 전투병으로 참전하였습니다. 이때 남북 청년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요? 이 전쟁은 부끄러운 동족상쟁의 전쟁이었습니다. 이 어찌 후손들에게 내놓을 역사이겠습니까?
이 동족상쟁 비극의 전쟁으로 인해 남북은 빚더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. 이때 아군과 북한군이 쓴 총알 한 개도 누가 공짜로 준 것이 아니고, 유엔군도 공짜로 도와준 것이 아니었습니다. 해서 남북은 크나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. 이것이 8.15 광복 후의 비극이었습니다.
왜 동족이 동족을 죽여야 했습니까? 이는 미⋅소(美蘇)가 우리나라를 사상으로 둘로 갈라 놨고, 전쟁을 붙여 자기들의 무기를 팔아 국익(國益)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.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두 개의 나라, 두 개의 사상으로 갈라져 남과 북이 적(敵)이 된 것입니다.
동족상쟁의 비극의 6.25전쟁으로 남북은 얼마나 많은 빚을 졌을까요? 이는 미⋅소의 계교(計巧)의 결과였습니다. 한때는 미⋅소가 우리나라를 주관하며 우리나라를 전쟁판으로 만들어 자기들의 해묵은 잉여(剩餘) 무기를 팔아먹었고, 동족 비극의 전쟁으로 남북이 더욱 가난에 빠지게 하였습니다.
6.25전쟁이 휴전된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,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여 경제 대국의 대열에 들게 되었습니다. 이는 모든 국민이 대동단결하여 이루어 낸 자랑스런 결과입니다.
하나 6.25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. 이제 동족상쟁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. 남북 간의 문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합니다.
